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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것이다.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 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寺格)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석등의 화사석, 불상 ,광배편, 배례석,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우수한 미술품들이 있었겠지만 경내에 현존하는 유물들은 화엄종의 수사찰인 부석사의 지위와 유구한 역사에 비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석불상들과 3층석탑 등은 부석사의 유물이 아니고 다른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당간지주와 석등,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19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 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상들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이다. 일제 시대에 벽체에서 분리하여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상을 그린 것인데 이 절의 창사주인 의상대사를 기린 조사당에 그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를 외호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듯하다.
크기 : 205.0 X 75.0 센티미터 

 

 

 

 

 

 

 


 

이 석등은 부석사 창건 당시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화려한 조각 솜씨와 조형미로 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손꼽힌다.
땅을 다진 지석 위에 네모난 기단석을 깔고, 그 위에 연꽃잎 모양의 복석을 얹었다. 그리고 8각석주를 세두고 앙연석을 받친 후에 8각의 화사석을 올렸다. 화사석의 4면에는 창을 뚫고 나머지 4면에는 보살상을 새겼다. 이 아름답고 화려한 화사석 위에 8각 옥개석을 씌웠다. 옥개석을 덮고 있는 프른 이끼는 오랜 세월을 이겨온 석등응 더욱 빛나게 해준다.